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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대-국어국문학과 /고전소설(한문학)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한국한문학에 대하여

by 오책방 2021.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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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문학의 이해를 위하여


우리민족은 중국의 문화와 한자표기에 영향을 받아 고유의 문자가 생성된 시기가 늦어지게 되었고, 우리말과 고유 정서를 담아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의 정서가 담긴 아름다운 한문학을 남겼다. 국가가 생성된 시기를 지나 4세기부터 20세기까지 기록되어온 한국한문학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보면 각 시기별 문학의 전개 양상과 특징적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전후, 고려에서 조선시대 왕조의 전환에서 또 조선 중기 임진왜란 전후나 특정시기의 정권 세력, 정치, 사상의 영향으로 특징적 문학 현상을 나타난다. 문화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신분 분화 속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에서 나타난다. 한문학이 곧 국문학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으며, 17세기가 지나면서 국문과 공존하는 시대가 된다.

이제는 한문문학은 국문문학에 대두 속에 점차 잊혔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우리 민족이 한자를 표기수단으로 삼았고 모든 기록이 한자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기에 한문학을 민족문학으로서 국문학의 출발이라고 보는 것은 당연한 처사다. 한국한문학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질의 사항에 맞는 작품을 선택하여 본인의 생각을 서술하였다. 그 첫 번째는 한국한문학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시기와 그 특징을 설명하고, 두 번째는 2020년 현재 한국인이 꼭 읽어 봤으면 하는 작품과 그 특징을 설명하였으며, 세 번째 한문산문 작가 가운데 그 작가의 특징을 설명하고 장점과 단점을 나름의 시각으로 평가하였다.

 

 

통일신라 금동불상

 

 

한국한문학 중요시기 및 작품과 작가에 대한 서술


1) 역사적 전개에 중요한 시점

신라시대 한국한문학의 영역 확대

나의 주관적인 견해로 한국한문학의 역사적 전개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되는 시기는 신라시대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문학사는 고조선부터 고려까지는 중국의 문자 한자를 빌려 표기하였으나 신라 향가나 고려 가요 등은 한국의 고유 순수 한문학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세종 24년(1443)에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순수한 시조, 가사 등의 한문학은 한문 문학과 함께 공존하고 발전되어 왔다.

신라시대의 문학을 대표하는 것은 향가다. 신라인들에 의해 창작되고 향유된 시문학 작품으로 다양한 성격을 살펴볼 수 있다. ‘주술성, 불교성, 서정성을 파악되며, 대상을 지향하는 특성이 서정적 자아가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언어로 표현하고자 예술로서 창작의 주체인 인간의 정서 변화에서 그 창작의 발화점을 찾을 수 있다. 향가 작품 <모죽지랑가>, <원가>, <찬기파랑가>, <제매망가>, <원왕생가>, <처용가> 등은 현실에 기반 한 상실의 승화, 현실과 초월의 조화를 통한 상실의 승화, 초월을 지향하는 상실의 승화로 분석할 수 있다.’ 향가 작품 중 <제망매가>는 10구체 향가로써 월명사가 죽은 누이를 위해 재를 올리며 부른 향가이다. 인새의 허무함을 종교적으로 승화시켜 인간 본원의 문제인 삶과 죽음을 간결한 형식으로 형상화하였고 문학적 서정성과 표현기교가 뛰어나 현존하는 향가 중 제일로 손꼽히고 있다. 이에 우리 민족의 삶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고 정서의 보편성, 표현의 지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나경수는 향가의 문학사적 의의를 다음 네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우리말에 의해 고유의 개성적인 정서를 표현했던 문학으로, 언어와 문학의 주제적 인식을 바탕으로 이룩되었다는 점에서 국어시가의 남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향가는 시상전개상 3단 구성의 형태를 취하고, 낙구형의 감탄사가 적적히 활용되고 있어 단연형, 시가의 정형성과 원류가 된다. 셋째, 향가 이전 상고대의 시가 몇 편이 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개인 창작문학으로서는 처음의 장르에 해당한다. 넷째 향가로부터 비로소 개성적인 민족 정서를 표출하는 예술세계를 실현하게 되었기 때문에, 향가는 민족문학의 의식을 확립시켰다.’ 향가 문학의 가치와 의미 살펴 다른 고전 시가와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는 설화에 있다. 신라인들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고, 어떤 사유의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뛰어난 비유와 상징에 높은 정신세계를 수반하고 있으며, 남은 작품이 적고, 해독 논란이 많아 연구가 미흡하나 우리 시가문학의 뿌리로서 연구에 소홀할 수 없다.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시대별로 수용한 문학 양식 및 문화는 우리의 국가 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융화되어 문화가 다채롭게 형성되었다. 신라 선덕여왕 대에서부터 당나라에 유학생을 파견하였고 당의 문화 정책 및 문물 받아들여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켰다. 이후 당과 연합하여 삼국을 통일하고 빈번한 교류는 계속 이어진다. 많은 유학생들이 교량적 역할을 하였으며 그 중 6두품 출신의 최치원은 신라보다 당나라에서 활동하며 두 나라의 정세를 고찰하기에 이른다. 최치원은 당시 골품제도라는 신분제를 기반 한 사회의 제약성, 한계성에 불만과 분개를 가지고 있었으며, 유학이 도피처이자 탈출구로서 이용되었다. 현실적 모순을 인식하고 신라로 돌아가지 않고 당에 머물러 있는 경향이 많았으며 돌아온 이들은 개혁을 주장하다 은둔해 버리기도 한다. 최치원은 신라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유롭고 개방적인 연애 관념을 가지고 있으나 문란하지 않고 보수적인 사상이 갖고 있으며, 인생관은 남녀평등, 계급차별 없이 평등한 것이다. 그러나 당에 유학할 당시 당나라의 풍속 문화, 윤리인식, 정치사상 등 우리와 다른데서 오는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그를 작가로서 신라의 언어가 당의 문학 양식에서 융합하려 시도하고 다시 우리 것으로 창조하기에 이르러 민족 특성을 가진 고유의 문장을 지어 독특한 문학을 형성하였고,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다

신라문인으로서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자신의 심정을 글로서 남겼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신라문화와 당나라의 문화갈등을 탐구하였고, 그 경험을 토대로 시와 소설을 남겼다. 그가 지향하는 삶과 민족의 사명감은 남달랐으며 지식인으로 문학작품을 통해 문화갈등을 융합하려 하였으며, 극복되지 않는 이방인으로서 외롭고 슬픈 내면을 드러내었다. 다음은 최치원이 가야산으로 은거하여 자취를 감추는데 그가 지인 시중 오언 절구 한 편이다. 먼 타국에서 고향의 그리움과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 회환을 읊은 작품이다.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조리기만 하는데 / 세상에는 나를 알아주는 이 거의 없네 / 한밤중인 창밖에는 밤비만 내리는데 / 등불 앞의 내 마음은 만리를 달리누나’

신라의 문학사적 한문학 정착의 바탕을 마련하였고, 단지 모방에 그치지 않았으며 우리의 정신을 이어 한문학의 초석으로 삼을 수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다. 신라는 문화융성기를 거쳐 8세기 중후반 왕권이 불안정해지면서 쇠퇴의 길을 가게 된다. 신분제도와 민중의 봉기가 이어지고 최치원과 같은 지식인은 좌절하며 자유인이 되길 자처한다. 신라에서 보여주는 작품성은 사회성이 드러난 소설이며 이것은 고려와 조선으로 왕조가 변하면서 문학적 계승이 조금이라도 이어지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신라시대 이전과 이후로 또 한편 재편 되어진 우리 한문문학사를 살펴 선조들의 사유방식을 엿볼 수 있다. 중국과 신라의 정세를 아울러 문학사적 위치를 아울러 살피고, 한문 기록에 담긴 우리의 전통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미적 인식력, 인간에 대한 통찰력 등 우리 고유의 정신세계를 느끼며, 우리 민족의 뿌리인 한문학의 초기 문학작품인 한문 문학에서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전승해 나가야겠다.

 

 

김시습

 

 

2) 2020년 한국인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작품

 

김시습의 한문 단편소설집 『금오신화』

 

2020년을 현재 한국인이 꼭 읽어 봤으면 하는 작품은 고독한 인간의 삶을 진지한 자기성찰을 통해 작가의 삶과 의식이 실천적으로 살아내고 진정성이 독 보이는 김시습의『금오신화』이다. 김시습은 조선 초기 문인이자 학자로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신하로 생육신의 한사람이다. 그의 유명한 일화는 수양대군이 자행한 단종의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은둔생활을 자초한 자이며, 승려가 되었다는 설과 관직에 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가 남긴 작품만으로도 김시습이 자기성찰을 위해 자기 자신을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보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자각과 자기비판, 꾸준한 작가의 노력했음이 사실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조선 전기는 고려에서 학풍과 문풍 계승되어진다. 중세 정치가 발전하고 국력 높아졌으며 그 집권세력엔 사대부가 있고 그 세력이 관각문학을 대표하는 관인 훈구파였다. 관각문학은 세상을 경륜하는 경세와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이라는 유가 문학적 효용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훈구파과 대립하는 사림파는 문(文)의 독자성을 강조 도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관각파와 사림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유교이념을 신봉하는 방외인이 한 파를 이루고 있는데 그 대표 문인으로는 김시습이 있으며 그 대표 저서로는 한문 단편소설집『금오신화』가 있다. 김시습은 금오산에 있는 용장사에 7년을 은거하여 글을 썼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그의 자서전적 성격이 짙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우리민족의 고소설사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최초의 한문소설이다. 지배층과 피지배층간에 활발한 교섭의 결과 형성된 서사물이다. 민속적 관념과 신앙이 깊은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전통을 포괄적으로 수렴하여 만든 작품이다. 『금오신화』의 소설 5편을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 김시습의 사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가 김시습은 기일원론(氣一元論) 세계관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소설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 등장인물은 귀신이다. 귀신을 바르고 진실 된 움직이는 기(氣)로 보아 감사의 대상으로 대하고 있으며, 귀신 자체를 순조로운 기의 흐름뿐이라 여겨 만물을 객관적·합리적으로 인식한다. 작가의 논리는 귀신을 기의 굴신영허라고 하며 둘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는 하나이며, 천지사이 오직 하나의 기만 흐를 뿐 분별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여긴다. 귀신에게 감사하고 이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며 그 효용을 해명할 정도다. 이처럼 순리를 뒤집어 활용하는 소설방식 채택에 작가 김시습은 허구를 통하여 현실세계를 비추어 반어적 방식의 글쓰기를 한다.

작가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의 기가 세상의 이치와 대립, 갈등하는 점이다. 자아의 욕망을 가로막는 장벽이 무엇인가 그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치했을 때를 인식하게 만든다. 소설적 허구 속에서 직면한 절실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갈 것인지 삶의 이치를 거듭 음미하게 만든다. 다음은 『금오신화』의 다섯 편의 소설에 대한 간략한 줄거리 요약이다. <만복사저포기>는 양생이라는 남원 지방에 사는 총각이 만복사에서 하루는 부처와 함께 저포 놀이를 후 양생이 이겨 부처가 배필을 주어 처녀의 영혼과 가약을 맺었다는 이야기다. <이생규장정>는 이생이라는 개성에 사는 주인공이 양반집 처녀 최씨녀와 혼인한 후 홍건적의 난 후 양가 부모 및 처가 죽는다. 최씨녀 환생하여 산 사람 이생과 죽은 사람 최씨녀 간의 사랑을 하는 이야기이다. <취유부벽정기>는 개성상인 홍생이가 선녀가 된 기자의 딸을 평양 부벽루에서 만나 나라의 흥망과 서로의 사랑에 대해 시를 써 나누며 놀았다. 새벽이 되자 하늘로 올라간 선녀로 인해 홍생은 앓아눕고 그리워하는 이야기다. <남염부주지>는 박생이라는 선비가 인품이 훌륭하고 유교경전을 읽으며 철학논문을 쓰는 등 과거에 실패했으나 뜻은 확고히 다진다. 꿈속에서 염라대왕과 사상적 담론하며 토론한 이야기이다. <용궁부연록>는 한생이라는 문장가가 용궁 상량식에 초대받아 새로 지은 누각의 상량문을 지어 용왕께 올렸고 크게 대접받고, 선물까지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금오신화』의 5편의 단편은 유학자 출신의 재주 있는 남자와 처녀영혼을 가진 귀신의 사랑을 애절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현실에서는 없는 소재인 용궁, 선계 같은 별세계를 그리고 있고 부처, 신선, 염라대왕, 용왕, 염부주, 저승사자 등이 등장하여 소설의 소재로 사용하니 신비하고 미신적인 세계관이 그럴듯한 소설적 구조에서 살아나고, 한편 철학적 투쟁을 하는 문학작품으로 승화된다. 주인공들이 종결부에서 홀로 그리워하며 살다가 소식이 끊기고, 병을 얻어 죽거나, 꿈에서 깨어나 자취를 감추고 살거나, 그저 조용한 죽음을 맞는다. 한낱 비극적인 운명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에 지나지 않을 수 있으나 공통된 점은 절의絶義 정신을 지킨다는 점이다. 자기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여 죽음에 이른다. 작가의 생이 고립무원과도 같아서 그의 창작의도를 알 수 있다. 비극적이긴 하나 초월의 의지를 내비치며 간절한 소망을 동시에 알린다. ‘현실초월의식은 이상세계 설정과 비극적, 비현실적 결말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남염부주지>의 염부주를 통해 정직한 왕이 다스리는 질서 있는 세계를, <용궁부연록>의 용궁을 통해 문학적인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문장왕국을 그려봄으로써 김시습은 현실을 초월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 소설은 대상이 서정적이고 미화되었으나 인물의 심리와 분위기를 섬세하게 표현되었고, 시가 대량 삽입되어있어 등장인물들의 심경을 대변하게 하여 더욱 서정적이다. 김시습은 불교, 도교적 사상관이 깊이 반영되었으며, 소설장르로서 김시습의 세계관은 전설적 요소는 고대신화와 흡사하여 초기소설이 지닌 불안전한 모습이 띈다. 그러나 이야기의 구성, 기교, 작가의 인식 및 우리의 풍속, 사상, 감정 등을 표현하고 있어 후대에 전승할 훌륭한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

 

 

 

3) 허균 한문산문의 장∙단점

 

조선의 혁명가이자 인본주의자 허균

 

허균은 조선 중기 문인이자 학자, 정치가, 시인이다. 고려시대 문벌귀족인 아버지 허엽이 동인의 영수였으며, 장인이 동인의 선봉장 김효원으로 정치 세력 집안이다. 집안이 부귀하여 부족할 것 없지만 그가 교류한 자들은 지배층과 기득권자들의 정반대에 위치한 이들이었다. 사회비판의식이 강했고,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이 고스라니 글 속에 담겼다. 반상하론적 사회관은 적서차별의 부당함과 부패관료를 규탄하는 글을 쓰며 사회제도에 반대하였고, 현실정치의 모순을 비판하고 개혁방안을 제시했으며, 허균의 문집인 『성소부부고』에는 논論편에서 자신의 생각을 논변류의 문체를 써서 가감 없이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다음은 허균의 <정론>에서 해결방법을 임금에게서 찾는 대목이다.

‘예부터 제왕이 나라를 다스림에 혼자서 정치하지는 않았다. 반드시 보상하는 신하가 그를 도와주었다. 보상해 주는 사람으로 적합한 사람만 얻으면 천하 국가의 일을 적의하게 다스릴 수 있었다. 이런 것으로 매우 뚜렷이 나타난 것으로는 요堯, 순舜, 우禹, 탕湯이 임금이 되었을 때고요皇陶, 직稷, 익益, 이윤伊尹 등의 보좌가 있었다. 후세의 임금은 비록 잘 다스리기를 원하던 사람은 있었지만 항상 보좌해 줄 적당한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였다.(중략) 정치가 예전과 같지 못하고 다스림이 날이 갈수록 저속해짐은 괴상하게 여길 것도 없으니, 어찌 백성들의 불행이 아니겠는 가’

허균은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으로서 이상적인 평등한 사회, 새로운 세계를 꿈꿨다. 학문적 세계가 폭넓었으며 산문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특히 실용성 있는 문장을 추구하고, 의사소통이 강조된 사달의 문장론을 중시했다. 다음은 허균의 <문설文說>에 나타난 문장론 세 가지다. ‘첫째, 실용성 있는 문장을 추구한다. 의사소통이 강조된 사달의 문장론을 중시한다. 둘째, 허균은 문장에서 현재성을 강조한다. 과거와 현재를 동일시하는 시대인식에서 출발한다. 현재적 소재가 문장으로 드러날 때 의사소통 기능은 확대되고 허균 산문에 드러나는 민중성의 근거가 되는 것이라 여겨진다. 셋째, 허균은 문장에서 개성을 추구한다. 당대문인들은 법고에 대한 기본 생각은 동일하나 자구字句의 구체성에서 차이가 있다. 당대 문인들은 법고는 자구에 있었지만 자구는 어휘 선택과 관련된 창작법과 편장자법을 통한 치밀한 문장 구성과 단락의 전개를 주장했다. 이월적 가치가 있는 문장, 문학성 있는 문장이 창작될 수 있다고 본다.’

허균의 글쓰기는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 과정으로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기득권층과 소외계층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이나 위정자에게 필요한 자질, 시대를 통찰하는 폭넓은 시각, 양심적 지식인의 실천 의지 등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한 담론이며, 화자와 세계 사이의 갈등은 논쟁의 형태를 띄며, 논쟁 자체를 다루기도 하고, 논쟁의 과정을 거쳐 다다르고자 하는 이상을 그리기도 한다.’ 이상 세계를 꿈꾸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 체제 자체를 흔들어 통치자와 기득권자들 도발하며 저항했다. 행정, 군정, 왕정을 비판하며, 자신이 주장하는 바의 근거를 제시하며 논리를 펼치며 설득력을 높였다. 대안과 실효성을 뒷받침하여 실천할 수 있는 틀을 잡고, 의지를 보이며, 비판하는 글을 써 소외된 자들을 대변하고자 했다. 허균의 논論은 솔직하고 거침없다. 다소 거칠게 느껴지지만 둘러가는 법 없이 명쾌하다. <유재론>과 <호민론>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인재를 신분차별 때문에 쓰지 않고, 백성의 시름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경고조의 글이다. 모순된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언젠가 백성들이 봉기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여기는 민본사상은 허균의 개혁정신의 기저다. 인간 본위의 평등을 기반으로 선구적이라 볼 수 있다. 민중적이고 진보적인 세계관과 실용성과 현재성을 강조하는 문장론과 작품은 후대 실학에도 영향을 이어졌으며, 문학사적 의의라 할 수 있다.

조선 역사상 가장 비운의 선비중 하나가 바로 허균이다. 그의 글은 역적의 죄목이 붙은 후로는 널리 읽히지 못했다. 자유분방한 성격은 파직의 빌미가 되고, 사대부들에 의해 반역의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다. 일상의 언어로 문장의 유려함을 추구하면서 개성 있는 문학을 추구하였고, 논리적인 단초를 연 것은 허균 이라할 수 있다. 허균의 단점을 찾자면 그가 바라본 세상은 이뤄본 적 없는 상상 위에 그려진 세상이었다는 것이다. 『성소부부고』산문의 문체적 특징에 대하여 소재 작품을 분류 및 설명하거나 실제 내용 연구나 문체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다.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이었던 만큼 일방적인 소통이 되지 않도록 실용적인 글쓰기, 소통이 되는 글쓰기, 체험에 의한 글쓰기를 추구했다. 한편 허균은 관직에 있어 글을 쓸 때 이중적 구조를 통해 불합리와 부조리를 말하며, 이를 직접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비판한다. 당세의 문제를 직시하기를 촉구하는 논論을 펼치고 지적하였으나 조선의 현실은 냉담했고, 허균은 <홍길동전> 작품으로 그에 부합하는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한 것이라면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조선 정치, 문화, 사회구조 봉건체제의 변동으로 변화의 전환기다. 산문형식의 글쓰기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를 반영하고 새로운 산문 문학적 장르로 한문산문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변화된 사회 속에서 기존 질서의 기득권과 대결구도로 보여 진다. 타협점이 없는 한쪽은 무너뜨리고 덮어 싹을 지우려들기만 하니 짓눌리고 억압된 민중이 인간다운 삶, 보편적인 가치를 인식하며 세상에 움트려 했던 것이다. 과거와 현재 다르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은 세상의 부조리함은 여전하다. 허균의 정신은 오늘날에 다시 보아도 새롭다. 비판적 시대정신, 개방된 정신으로 자문자답하고 있어 일방적인 논리는 배척하고 모순된 점까지 포괄하고 있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다.  산문을 보면 그 내용이나 문체가 개성이 강하고 가치관이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산문은 어떤 목적을 두지 않고 일상의 주관적 감정과 자발적 사고를 드러내 작가의 내면과 그의 자유로운 형식의 글을 볼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의 정신적 유산이 고스란히 남은 고전 산문은 국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시간을 초월한 문학적 소통이 가능하다. 그 시대의 화법과 삶을 이해하고, 선조들의 사유방식과 실천방법을 배워 그 가치를 지표삼아 오늘날의 시점으로 배워 계승하고 발전시켜야겠다.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한국한문학에 대하여


한국한문학의 역사적 전개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되는 시기를 생각하여 보았을 때 결국 가장 중요시하게 여겼던 부분을 찾게 되고 그것은 우리 고유의 정신이 살아남아 계승될 수 있었던 시점을 찾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문자가 없어 한자를 빌려 오게 되었지만 우리 선조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한국 고유 순수 한문학을 하였고 그것은 소실되지 않고 분명히 지금 현재에 까지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2020년을 사는 한국인의 현재 상황을 우선 살펴보았다. 우리 지금 어떤 모습인가 질문을 하였을 때 우리는 고통스럽지 않은가 행복한 가 자문자답을 해보았다. 고통스럽다면 무엇이 고통스럽고 행복하다면 무엇 때문에 행복한 가 질문하였다.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삶의 영역이 방역이란 이름으로 폐쇄되고 고립되었다. 인간과 자연이 이렇듯 공존하지 못하는 경우는 역사서에서 많이 보았지만 21세기에 다시 도래할 줄은 몰랐다.

통일신라시대를 지나 고려, 조선전기에 이르기 까지 한문학은 문파들의 성격, 정권세력 등으로 갈라지며 계승되고 발전해 왔다. 그 중 조선 전기에 이르러 수양대군이 자행한 단종의 왕위 찬탈에 분개하며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신하로 생육신의 한사람 김시습이 인상에 남았다. 고독한 인간의 삶을 진지한 자기성찰을 통해 작가의 삶과 의식이 실천적으로 살아내었고 그 작품이 비록 귀신이야기이나 기일원론(氣一元論) 세계관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 우리도 자기성찰을 위해 자기 자신을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자각과 자기비판 등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비판정신과 저항은 조선 중기 문인 허균을 빼놓을 수 없다. 소외된 자들의 대변인이자 개혁자로서 지금 우리 시대에 지극히 필요한 인물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혁이란 것이 판을 뒤엎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을 갈망하고 지극이 당연한 이치를 따르는 평범한 삶을 살고 행복을 누리는 것인데 그 작은 차이를 모르고 자기 이득만 챙기려는 집단이 우후죽순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자본주의와 사회복지가 알맞게 균형 잡힌 세상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주는 선조들의 지혜가 한국한문학에 담겨져 있다.

 

* 참고문헌

1) 김혜진, 향가의 서정성 연구, 서울여자대학교, 2005년

2) 나경수, 향가문학론과 작품연구, 집문당, 1995년, 200-206쪽

3),4) 손종흠, 안대회, 한국한문학의 이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0년

5) 정미현, 김시습의 작가의식 연구,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2006년

6) 허균, <정론>, 「논論」, 『성소부부고권 11 문부8』

7) 이규운, 허균의 문장론과 그 구현 양상, 성신대학교, 2009년

8) 이민지, 고전산문의 문학교육적 가치연구, 연세대학교 교육원,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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