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설 [기재기이(企齎記異)] 작품과 신광한 작자 소개
우리 문학사에서 조선조 창작 작품 다수가 작자미상이다. 16세기 기재 신광한은 당대 조선 초기의 문학사 정리 및 사회와 연관 지어 작품연구를 심도 있게 분석할 자료로 아주 중요하다. 기재 신광한(1484~1555)『기재기이』는 「안빙몽유록」,「서재야회록」,「최생우진기」,「하생기우전」네 편의 한문소설로 구성된 작품집이다. 최근 학계에서 우리나라 최초 소설 작품으로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아닌 기원을 앞당긴「최치원전」을 거론하고 있다. 여기서 15세기에서 다시 16세기의 공백을 소설형성기의 흐름을 보았을 때 신광한의 『기재기이』가 문학적 맥을 이어가고 있다.
작자 신광한은 중종 5년 26세 때 과거에 급제하고 홍문관 정자, 승문원 박사, 홍문관 부수찬, 교리, 응교 등 주로 언관으로 활동, 조선 중기 당대 도덕과 문장이 최고로 손꼽히던 인물이었다. 1524년 중종 19년 41세 때 훈신과 척신들의 왜곡된 언로를 바르게 하여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한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류를 축출하는 ‘기묘사화’ 관련된 기묘사림으로 몰려 삼척부사에서 체직되었고, 여주 원형리에 물러나 15년간 은둔생활을 하였다. 이 시기가 독서와 창작에 몰두한 때이다. 중종 33년, 55세 때 다시 성균관 대사성으로 복직, 병조참판, 사헌부 대사헌, 한성판윤, 형조판서, 이조판서, 좌찬성, 우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고소설 [기재기이 : 최생우진기崔生遇眞記]에 대하여
고소설 [기재기이 : 최생우진기]의 등장인물의 성격
「최생우진기」는 주인공 최생(崔生)의 신선세계에 대한 체험을 암자에서 사귄 증공(證空)의 의해 전해진 이야기다. 신선들을 만난 최생이 증공에게 누설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자신이 실족사고하여 당도한 신선세계에 있었던 일들을 들려준다. 주인공 최생은 속세를 멀리하고 자연을 즐기며 대범하게 말하고 행동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라고 비웃는다. 그러나 최생은 하나도 개의치 않는다. 최생은 날 좋은 어느 날 험준한 용추동을 보고자 길을 아는 증공을 앞세워 간다. 증공에게 자신의 의사를 말함에 있어 거리낌 없고 그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대담하게 어쩌면 무모하게 홀로 바위에 서 기세하나 흐트러트리지 않고 절벽에서 날아 떨어진다. 꿈꾸듯 들어간 곳은 다음과 같이 암시하고 있으며 그는 용왕의 연회에 들어서서 용왕과 신선들을 만나고 돌아온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산이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하늘은 푸르러 대낮 같은 데 낮은 아니었다. 산 아래 연기 낀 나무들이 우거져 마치 성들처럼 보였다. 최생은 인간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 출처 : 박상태, 심치열, 고전소설강독,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년, 92쪽
유가적 이념이 실현되는 공간으로 신선세계가 그려지고 있어 그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는 곳으로 여기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그의 이상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어 최생 자신이 못다 이룬 뜻을 가슴에 품은 채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올곧음은 여기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음은 최생은 현실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용왕에게 고하는 대목이다.
하루살이처럼 하찮은 자질로 진토에 사는 우매한 인간이 삼생(三生)의 바람으로 기이한 만남을 이루었습니다. 채찍을 잡고 신발을 지키는 소임이라도 사양하지 않을 것이요.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 출처 : 박상태, 심치열, 고전소설강독,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년, 98쪽
한편 돌아가 누설하지 말라는 신선의 말에 최생은 증공과 약속하길 삶과 죽음을 같이하고 배반하지 말자 맹세했음을 용왕에게 전하고 이 맹세 저버리지 않도록 선처를 요구하기도 한다. 증공이 어떤 사람인지 의심치 아니하고 그와 약조한바 지키며 신의를 다하려 한다. 다만 돌아온 최생은 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었고 이후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으로 그가 최종적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곳이 어디인지 그 의중은 알 길이 없다. 이야기를 전하는 보조인물로 증공이란 자는 불교를 배우기 위해 산 속 생활만 21년째이다. 그는 최생에게 용추동의 무용담 장황하게 늘어놓지만, 그곳 지리가 험하고 간담이 작아 가길 꺼려한다. 최생의 단호함에 어쩔 수 없이 길을 안내한다. 그는 부처의 힘을 빌었든지, 말을 빌었든지, 배운 것이 행동으로 이행되는 인물이 아니었다. 말로는 대인배 같으나 뒤로는 한없이 소인배같이 옹졸하다.
최생은 용추동에서 사라지고 증공은 홀로 암자에 돌아온다. 스님들에게 괜한 오해를 사기도 하고 억울함이 반이지만, 최생에게 나쁜 일을 저지른 것만 같아,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 염불만 왼다. 위험스러운 용추동에 최생을 두고 홀로 돌아온 점, 끝까지 최생을 찾지 않은 점, 스님들에게 부탁하여 사람을 풀어 최생을 찾으러 가지 않은 점, 마냥 염불만 외며 자신의 두려운 마음만 벗어던지려 한 점 이런 점들을 보았을 때 증공은 문제에 있어 해결책이 없는 사람이고, 책임감 있는 자세는 없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위력 앞에 작아지고, 자신의 마음만 살피는 자기 본위적인 인물이다. 최생의 집안에서도 발길이 끊길 때쯤에 최생이 돌아왔다. 증공은 최생이 멀쩡히 돌아온 것이 마냥 기쁘기도 하고 무언가 수상하고 이상하여 최생에게 다음과 같이 되물으며 그간 사정을 이야기 해 달라 재촉하는 한편 저를 속이면 다시 보지 말자며 최생에게 옹졸하게 군다.
허! 이상하군요. 당신은 천 길 벼랑에서 떨어졌는데 다치지 않았다 하고, 70일을 먹지 못하였는데 굶주리지 않았다고 하니, 당신에게 필시 이상한 일이 있었군요. 저를 위해서 까닭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 출처 : 박상태, 심치열, 고전소설강독,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년, 91쪽
최생이 위험한 곳에서 살아 돌아온 것만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계속 거짓만 둘러댄다고 의심만 가득하다. 한 곳에 오랫동안 선을 배운 이가 이렇듯 배운 것 하나 없이 구니 시간을 들여 수학한 세월이 아까울 뿐이다.
고소설 [기재기이 : 최생우진기]의 주제의식
신광한의 작품집『기재기이』는 작자 신광한 삶을 배제할 수 없다. 「최생우진기」는 신광한이 기묘사화 이후 삼척부사로 좌천되었을 때이다. 주인공 최생이 신광한 자신이라면 신선세계는 유가적 이상 세계이자 뜻을 이룰 수 없는 허구의 세계이다. 신선세계의 황제는 최생에게 자리에 앉기를 권하고 위로 한다. 신선 옷을 입 골짜기 신선, 도복을 입고 섬의 신선, 나이든 선승 산의 신선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와 시를 나눈다. 최생은 용왕이 이 기이한 만남을 유자가 앞장서 한 대목 읊으니 그들 앞에서 즉시「용궁회진시」삼십 운을 지었다. 용왕을 ‘구 년 홍수’와 ‘칠 년 가뭄’ 구절은 음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여 군주의 자질을 설파한다.
최생은 이치에 통달한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소? 임금에게 아첨하는 세상 유자들은 홍수와 가뭄을 운명이라고 치부하는데, 홍수와 가뭄을 운명이라고 하고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면 요임금과 탕임금에게 무슨 귀한 게 있겠소? 요임금과 탕임금이 홍수와 가뭄을 막을 수 있다면 운명을 왜 걱정하겠소? 고로 정치와 가르침이 아름답고 밝아서, 양(陽)이 으뜸이요 음이 어그러짐이 있으니, 이는 요임금과 탕임금을 힘쓰게 한 것입니다. (중략) 당시 왕이 살피지 못하여 하늘을 버리니 매우 슬프다 하지 않겠소? 세상 가르침이 쇠퇴하고 도덕이 약해지고 하도 낙서(河圖洛書)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소. 음양오행의 감응이 어찌 순조롭겠소? 백성의 삶이 애처롭소이다.
* 출처 : 박상태, 심치열, 고전소설강독,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년, 95쪽
신선들은 군주가 덕을 닦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광한이 꿈꾸었던 이상 세계에 대해 다음 엄태식은 ‘조광조는 당대까지의 그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유교적 이상국가론을 펼쳤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 요순의 이상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최생우진기」의 용궁 형상 및 그곳의 토론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진 문제가 바로 조광조가 추구한 이상 세계 및 그의 至治主美와 매우 유사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신광한은 조광조가 이루지 못한 이상 세계를 소설화하여 신선세계에 담았다. 우연이라도 발이 닿아 당도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렇게 돌아와 다시 찾지 않는 것 또한 자신의 의지처럼 표명하고 있듯이 소설이 마무리 되고 있다.
고소설 [기재기이 : 최생우진기]의 소설사적 의의
신광한의 『기재기이』은 소설형성기의 흐름상 문학적 맥은 우리 문학사에서 조선 초기의 문학사 및 사회와 연관한 작품연구에 중요자료다. 최근 학계에서 기원을 앞당긴 최초 소설 작품으로「최치원전」을 거론하고 있다. 최치원은 계급의 한계로 정치의 어려움이 있어 당나라에 유학하는 신세였다. 신라문인으로서 최치원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신라문화와 당나라의 문화갈등을 탐구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시와 소설, 자신의 심정을 담은 글을 남겼다. 당나라에서 이방인으로서, 고국에서 다시 은거하는 삶은 산 최치원과 기묘사화로 유배된 신광한의 모습이 겹쳐지며 고향의 그리움과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 애환을 읊은 외롭고 슬픈 내면에서 작자의 삶과 작품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소설형성기의 흐름을 「최치원전」에서 신광한의『기재기이』의 「하생기우전」과 김시습의 『금오신화』의 「만폭사저포기」로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음을 살펴 본 예시이다.
신광한의 『기재기이』의 「하생기우전」을 볼 때, 「최치원전」에 나오는, 장사로 큰 부를 형성한 부친의 강제 중매결혼에 의해 희생된 귀신이 여주인공과 문사형의 현실인물 간의 로맨스, 장가 등 한 시를 주고받음을 통한 로맨스의 진전, 주인공의 도가적 삶의 묘사 등의 전통과 「만폭사저포기」에서의 인연설에 바탕 한 만남, 시를 통한 화답, 이미 죽은 여인과 현실의 남성과의 사랑, 내세의 인물임을 입증하는 은주발의 증거물 등장, 불교나 도가적 삶의 영향 등은 『기재기이』로 그 맥이 이어져 내려오게 된다. (중략) 『금오신화』 이후의 조선 초기 소설문학사의 공백을 메워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출처 : 박상태, 심치열, 고전소설강독,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년, 100쪽
『금오신화』이후 임제의「수성지」, 권필의 「주생전」, 허균의 「엄처사전」등의 5작품이 나오기 까지 소설문학사의 공백을 메워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는 것은 그런 문화 주류가 형성되어 작품으로 이어졌을 거라는 명백한 증거를 내세울 수 있다. 중국의 전기소설의 모방에서 벗어나 자력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는 것을 증명할 타당한 근거가 필요하고 내용면에서도 작자미상이 아닌 명확한 작자를 내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두는 것이다.
고소설 [기재기이 : 최생우진기]의 시공간적 배경, 문체, 서사구조 분석
「최생우진기」의 공간적 배경은 강원도의 두타산이다. 1520년 신광한이 삼척부사로 갔을 때 두타산을 작품의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했다. 용추동 절벽에서 실족한 것으로 신선세계에 당도하나 실족인지 자의인지 모호하다. 절벽 아래로 낙하하는 최생은 꿈꾸듯 흘러간다. 무모한 일이나 모든 우연을 담대하게 여기는 듯도 하다. 자신을 우활하다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신선들이 사는 세계에 떨어진다. 그곳에는 신선이 ‘운명의 다한 천 년의 끝’이라 시를 읊으며 은연중에 자신이 신라 말기의 선조로 최생을 자신의 자손이라 말하기도 한다. 신선세계는 모든 시간이 있다. 최생은 잠시 그런 신선세계를 엿본 이방인에 불과했다. 최생은 신선세계에서 겨우 하루 지났을 뿐인데 암자에 돌아온 시간은 70일이 지나 있었다.
최생은 증공과 함께 용추동으로 갔다 실족하여 암자에는 증공만 돌아온다. 이후 최생이 다시 나타나서는 그 동안 신선세계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준다. 신선세계에서의 일들은 최생이 겪은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신선세계 이야기를 들려주며 누설하지 말 것을 약조하나 증공은 이 일을 자주 이야기 하였다고 말미에 적혀있다. 이야기 안의 또 다른 이야기의 액자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생우진기」의 최생이란 인물은 우활한 사람으로 증공이란 사람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처음부터 그러한 인물들이 하는 말 따윈 진실도 아니며 모두 허구에 의한 일들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니 한바탕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작자가 바라는 의미 여부 따위는 알 필요가 없음을 시사하고 있으나 소설 작품으로서 작자의 삶과 이어져 있음을 깊이 알 수 있다.
고소설 [기재기이: 최생우진기]이 우리에게 남긴 것
고전소설강독 과제를 위한 신광한의「최생우진기」고소설 작품을 살펴보았다. 중국의 문화 영향을 많이 받아온 우리나라는 문자에서부터 문화에 까지 많은 영향을 받아왔지만 고유의 정신이 담긴 문화적 소양만은 중국과 다르며 점차 우리 자체 문화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15세기 중엽 김시습의 『금오신화』이후 공백기를 메울 수 있는 16세기 소설사 작품으로 신광한의 『기재기이』는 소설형성의 맥을 이어가는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조선조 창작 작품의 경우 작자미상의 작품이 다수이기에 작자가 명확하며 당시 유사한 소설유형의 발견은 우리 소설사 연구에 큰 힘이 된다.
「최생우진기」는 작자 신광한의 창작에 미친 영향으로 기묘사화를 거론하였다. 그가 삼척부사 좌천되어 갔을 때 두타산을 작품의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하였다. 그가 겪은 일과 자신의 심정이 소설화되어 이루지 못한 이상 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심적 표현이 아닐까 생각하여 보았다. 덕망 있는 임금과 그 아래 신하로서 이상적 유가적 이념이 실현되는 세계는 비록 신선세계라는 허구적 세계이지만 그곳에 발을 딛고 잠시 다녀와 보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다시 돌아가지도 기다리지도 않는다는 게 작자의 바람이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최생우진기」는 『금오신화』의 「용궁부연록」,「남영부주지」작품과 유사한 소설유형의 관계를 알아볼 수 있었다. 소설형성기라는 부분이 생소하였다. 모든 지 한 번에 생겨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맥이 이어간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꼭 유기물같이 느껴졌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한번 태어나 죽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새롭게 태어나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내 자손을 남기는 듯 했다. 정신은 사라지지 않고 민족의 얼이 보이지 않게 남겨지는 것처럼 문화란 그렇게 우리 깊이 각인이 되어 살아 숨 쉬는 듯 했다.
참고문헌
1) 엄태식, 최생우진기의 서사적 의미와 신광한의 현실인식, 한국고전번역원, 2013년
2) 박상태, 심치열, 고전소설강독,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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