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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교육/한국 민주주의

[미래의 대한민국정부] 민중의 저항하는 방식 - <울지 않기>

by 오책방 2016.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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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미래의 대한민국정부

통찰에 관한 책을 읽다 미래의 정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미래의 정부는 모든 이들의 요구사항 과학기술을 통한 빅데이터 수집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찾아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리라 예측하기도 합니다. 아주 먼 이야기가 아니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 과정 또한 험난할 수 있겠지요. 우리의 이상대로 이뤄지긴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정부와 민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모두 함께 운영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올 4월에 읽은 책 리디 살베르 <울지 않기>(리뷰 http://roh222.blog.me/220676018614)란  책이 떠올라서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부인된 악행은 더 맹렬하게 다시 나타난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언제나 큰 것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작은 것이 대가를 치르는 법이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아마 큰 것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울지 않을 수 없는 나날입니다. 세월호416가족의 마음처럼 우리는 깊은 상실감을 느꼈고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잊어야 한다고 덮어두려고 한다면 그건 우리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 보지 않고 다시 이와같은 일을 반복하자는 뜻이 됩니다. 우리의 역사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 책방 가는 길 YES 24

관습과 법은 전통 계승을 요구합니다.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위엄있게 행동하지요. 너무나도 확고부동합니다. 전통대로 교육하고 지금 그대로여야 한다고 믿게 만듭니다. 가차 없는 논리, 자신들이 아는 유일한 것입니다. 돈과 권력으로 중요한 사람들을 구분하고, 고결한 농민이라도 불순분자로 지목하고 수천 명의 사람들을 도살합니다. 더이상 민주주의 사회라고 볼 수 없는 독재의 그늘이 드리워진 21세기 같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침묵하였습니다. 그런데 하인리히 1:29:300의 법칙같이 우리는 이 커다란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을 목격하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하는 모든 민주주의와 합리적인 사고 효율적인 정부운영을 바랐던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들이 처벌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들과 관련있는 모든 사람들이 처벌받기를 바랐고 탄핵이 아니라 즉시 하야를 바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3차 담화에서 국회에 뜻에 따르겠다고 하고 이후 어떻게 되었나요. 본질을 흐린 그들만의 협상이 진행되었습니다. 누구를 반대해서 누구를 지지했지만 유사한 과정이 그들 진영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져 있고 이것은 또 다른 혁명이자 새로운 세상이 활짝 열렸다고 희망을 갖기도 합니다. 

공동체가 바란 자유, 우리는 환희와 열정과 열광으로 광장에서 그들에게 경고했습니다. 마음과 정신의 혁명이 발동하였고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부정부패를 청산하려 합니다. 귄위에 맞선 도전이고, 우리가 증오하는 그 모든 비참을 쓸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을 바라며 촛불의 불길에 몸을 싣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것이고 거대한 무언가를 다시한번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위험한 것인가요? 위험한 것으로 치부되고 억압되고 이상한 논리로 상처입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변함없이, 변함없는 편견을 소중히 여기기도 합니다. 그들을 상대로 말이 재산의 전부인 민중이 촛불 하나로 모였습니다.



02. 정치탄생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당장은 희망에 비위를 맞추지만 결국 파탄으로 끝날 위험한 계획들일 뿐이며 이상을 향한 강렬한 욕망을 차갑게 식히고 정치적으로 성숙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요. 정치는 어떻게 탄생되었던 것일까요? 우리는 그들의 수상쩍은 이야기들, 거창한 약속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은 오래된 사정에 침묵하고, 그들만의 운명을 개척하려하며 스스로 중요한 존재가 되려하지요. 모든 사람들을 감명시켰다가 고지에 선 순간 그들은 열망해온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곤 공공질서, 현실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천천히 신중하게 나아가야 하며, 혁명놀이는 모든 걸 파괴하고 곤란하게 할뿐이며 냉철하게 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그들 나름대로 이것을 정치 감각이라 부르지요.

정치인들의 속성, 방식, 자질, 권위, 오만한 부자 계급, 사나운 결의, 냉혹한 분노, 맹렬한 의지는 어떤 식으로 목적에 도달하리라 확신합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친박이 내세운 정진석 의원이 되었습니다. 정반대의 결과가 그들의 선택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지금당장 살아남기, 버티기, 끝까지 가야하는 그들의 결의는 아주 대단합니다. 거기에 국민이 들어설 자리가 있었을까요? 새누리당 보유 자산이 1000억입니다. 이 부의 축척은 불법으로 이루어 졌고 그들은 돈 없이 정치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박계들이 탈당하려할까요? 지켜보겠습니만 기대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들만의 리그를 다시 꿈꾸겠지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국가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국민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역겨운 사랑이 아닐까요? 정치인들은 누군가에게 강요받았고, 질문하지 않았고, 명령받은대로 행동했습니다. 과거를 흉내내고 음흉한 술수와 손을 잡았습니다. 추종자는 그들 중 돈을 제일 많이 부르는 사람에게 자신을 파는 비천한 짓을 했습니다. 피해 망상에 휩싸인 가장 형편없는 인간들이 정치인들입니다. 우리는 구분해내야 합니다. 형편없는 정치인들을 골라내야 합니다. 정보가 권력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누가 더 진실을 파헤치느냐에 힘이 실릴 것입니다. JTBC 손석희 앵커는 어떤 마음으로 이 사태를 지켜보고 보도할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목숨이라도 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이 아니라 이미 외압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방패가 되어주는 권력이 있는지, 있다해도 그 권력의 힘도 믿을 수 없지만, 그는 오로지 국민의 권력을 가장 믿었을 것입니다. 그의 용기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03. 민중의 저항하는 방식

서민의 계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가난한 농부의 긴계보로부터 물려받은 이 땅에서 아주 적은 것밖에 갖지 못했다는 신념이 남긴 흔적에서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세상을 모르고, 보잘 것 없는 조건, 겸손한 태도를 평생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워지지 않는 태도, 온갖 악습과 온갖 굴종을 허용하는 태도, 누구라도 정치 얘기를 꺼내면 어쩌나 겁내고 실수할까 노심초사했습니다. 노동자의 세상은 검은 깃발 아래서 싸우고 있습니다. 노동자도 더이상 같은 노동자가 아닌 세상이 되었지만 어찌되었든 노동자는 계산없이 속셈없이 의심없이 젊음과 순수함, 꿈을 바쳤습니다. 왜 공동체적인 자유적인 삶을 바라는지 그들은 알까요? 더러운 동정이 끝나기를 바랐으며, 삶을 그저 유쾌하게 사는 진짜 삶을 원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논쟁은 반복되고, 불행은 연쇄적인 폭력만이 뒤따랐습니다. 역사는 비통한 교훈을 넘치도록 보여주지만 이 모든걸 단번에 뛰어넘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 수 없음에 때때로 목이 매일 뿐이지요. 국민의 당, 국민이라는 말의 남용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리디 살베르의 <울지 않기>의 글을 빌어 여기에 제가 느낀 바를 옮겨적었습니다. 제가 이런 대단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보아왔던 지성인들의 생각을 저는 이제서야 알았을 뿐이지요. 아마 다음의 저와 같은 또 누군가가 있을테지요. 우리를 점차 나아가게 하는 진화의 법칙이 있음을... 그것이 우리 안에게서 놀라운 속도로 폭주하고 있음을... 무기를 가지고 하는 전쟁에선 언제나 졌지만, 다른 전쟁에선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라걸 배웠습니다. 리디 살베르는 우리가 행해야 하는 자세를 책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맹신은 서로 닮아 우열을 가릴 수 없으니 종속을 경계하고 이편 혹은 저편의 독선주의자들에게 복종하지 않고 자기 양심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부정부패, 불합리함에 저항하는 방식은 자기 양심에 복종하는 그런 유일한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그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조금씩 자유를, 신뢰를 허용하며 감취진 타인에 대한 애정, 부드러움, 다정함을 발견하고, 서로에게서 더 나은 방향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저항하는 방식입니다. 이제는 정치적 중립지대이며 그 경계가 모호해 질것입니다. 높고 낮은 사람이 함께 웃고 온기와 깊은 친화력을 느끼고 우정을 나누기를 이미 그런 우정을 나누고 있음을 광장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말만하고 행동하지 않는 자들, 다른 이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는 자들을 혐오하는 그리스도입니다. 헛된 영예를 경멸하고 포식하고 주인이 되려는 자에게 징벌을 예비해둔 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 자리를 지켜려 애쓰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들의 비선들, 그들의 수족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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