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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대-국어국문학과 /국어사

국어사의 시대 구분 방법 / 고대~현대 각 시기의 언어적 특징

by 오책방 202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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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에 대해서


고대국어부터 현대국어까지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의 국어의 변천사를 기술하는 것이 국어사이다. 우리나라 역사와 묶어 국어를 보기보다는 언어의 기원을 따져 영토에 분포되었던 언어를 찾아 어떻게 흡수되고 소멸되어 언어가 진화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래서 우리말의 역사 보다는 언어의 한 종류인 한어사(韓語史)를 살펴보겠다. 한 사물을 보고 똑같이 부르는 말, 그것을 기록한 문자를 통해 어떤 영토의 사람들이 같은 음과 뜻으로 기록 했는지 찾아 밝혀내는 것이다. 한반도를 넘어 아주 먼 곳에서도 같은 음운을 사용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로서 언어의 기원이 같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 언어의 삶과 죽음이다. 이것은 국가의 삶과 죽음이기도 하다. 인간이 언어로 표현했던 것들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집단을 이루고 또 다른 집단에 영향을 준다. 언어로서의 영향력을 따져 조금 더 강하고, 유용한 언어가 인간의 삶 속에 살아남고, 국가는 문자를 얻어 그들이 이룩했던 모든 것들을 기록하게 된다.언어의 영향력만을 따졌다면 우리는 중국말을 썼어야 옳겠지만, 모국어란 그 민족의 얼이 담겨져 있다. 우리가 우리로서 국어에 뿌리내리고 이 영토뿐 아니라 어디에 가서 살아가더라도 모국어를 잃지 않으려하는 이유일 테다. 우리가 오래시간 중국의 문자를 차용하여 사용했지만 우리의 언어를 잘 표현해 낼 수 없었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게 되었다.

언어가 빠르게 변하는 시기를 마디라고 한다. 언어 마디 사이에는 시대마다 고유한 언어습관이 있다. 한어사(韓語史)는 한민족이 예로부터 써온 말이며, 지금의 공용어가 아닌 사투리, 층위어, 옛말도 포함된다. 옛 문헌을 통해 그 시대의 집권세력이나 민중의 생활을 엿볼 수 있고 더 세밀한 역사나 문화를 알아볼 수 있다. 긴 시간 동안을 우리말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 

 

 

 

국어사의 시대 구분 방법


국어사의 시대 구분 방법은 왕조사로 나누는 방법특정 시대로 나누는 방법 또는 족속의 구분 방법이 있다. 여기서 족속이란 우리 조상으로 여겨지는 고대 여러 족속들의 언어에서 그 뿌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타당한 추론이다. 부족한 것은 토착어나 진한어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완한다.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를 거듭하여 몇몇 학자의 주장에 따른 것이나 문헌자료는 적고, 우리 문자는 고대를 지나 중세 넘어오는 과정에 생겨나 한자 표기의 문헌 자료에서 옛 우리말 연구에는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다음은 이숭녕과 강길운 학자의 왕조사에 따른 국어사 시대 구분 방법과 박병채, 이기문, 최전승 외 3인 학자의 특정 시대에 따른 국어사 시대 구분 방법이다.

 

1) 왕조사에 따른 국어사 시대 구분방법

(이숭녕 학자의 왕조사에 따른 국어사 시대 구분)
1) 상대 국어시대(삼국시대는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를 말한다)
2) 통일 국어시대(통일신라시대 이후의 시대를 말한다)
3) 조선 국어시대
4) 현대 국어시대

 

(강길운 학자의 왕조사에 따른 국어사 시대 구분)
1) 상고 국어시대(신라말 시대까지, AD ~935년)
2) 중고 국어시대(고려어, AD 918년~1892년)
3) 근고국어시대(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까지, AD 1592년)
4) 근대 국어시대(조선 고종 31년 갑오경장까지, AD 1894년)
5) 현대 국어시대

 

2) 특정 시대에 따른 국어사 시대 구분방법

(박병채 학자의 특정 시대에 따른 국어사 시대 구분)
1) 전기 고대국어시대(고려 숙종 AD ~1103년, 중국 송나라 손목 저술한 ‘계림유사’이전)
2) 후기 고대국어시대(조선 세조 25년 훈민정음 창제 이전, AD 1103년~1443년)
3) 중기 국어시대(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이전, AD 1443년~1598년)
4) 근대 국어시대(조선 고종 31년 갑오경장 이전, AD 1894년)
5) 현대 국어시대(AD 1894년~현재)

 

(이기문 학자의 특정 시대에 따른 국어사 시대 구분)
1) 고대 국어시대
2) 전기중세 국어시대
3) 후기중세 국어시대
4) 근대 국어시대
5) 현대 국어시대

 

(최전승 외 3인 학자의 특정 시대에 따른 국어사 시대 구분)
1) 고대 국어시대(삼국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10세기, 차자 표기)
2) 전기중세 국어시대(고려건국부터 조선까지, 10~14세기까지, 차자 표기)
3) 후기중세 국어시대(조선건국부터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까지, 15~16세기말, 한글 표기)
4) 전기근대 국어시대(조선 임진왜란이후~, 17~18세기중반)
5) 후기근대 국어시대(조선 고종 31년 갑오경장까지, 18중반~19세기)
6) 현대 국어시대(20세기 초반~현재)

 

 

 

 

 

 

 

각 시기의 언어적 특징


국어사의 시대 구분 방법은 위와 같이 학자들의 견해차가 있으며, 그 중 가장 보편적인 고대국어, 전기 중세국어, 후기 중세국어, 근대국어, 현대국어로 구분하여 아래 각 시기별 언어적 특징을 서술하였다.

1) 고대 국어시대

고대 국어는 우리 조상으로 여겨지는 고대 여러 족속들의 언어를 가리킨다. 토착어와 길약어를 시작으로 기자조선어, 위만조선어, 진한어, 신라어, 백제어, 고구려어 특징을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소수인종의 언어인 길약어는 지금의 한국어가 방언처럼 문법형태소와 음운체계가 일치하는 언어다. 지리적으로 지금의 사할린 일대에 쓰인 길약어는 그 지리적 조건이 고유어를 잘 보존케 한 반면에 한국어는 어휘 차용이 심하다. 한국어가 알타이어에서 많은 어휘를 차용했을 뿐 두 언어사이의 문법형태소가 일치 대응하는 것이 없어 기존 학설처럼 한국어가 알타이어에 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가 있으나 아직 분분하다.

기자 조선어는 우리 고대 국가인 고조선의 왕조를 살피면 건국은 기자가 세웠다하여 기씨 조선이라 부르며, 기자 조선이라 하였고, 그 언어이다. 고대 황하 이북에 주로 알타이족 및 한민족을 포함한 고아시아족이 살았다. 중국 최초 왕조인 은나라는 알타이족이기 때문에 고구려의 표기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기자 조선의 지배층이 몽고계 언어를 쓴 종족으로 추정된다. 위만 조선어는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인 위씨 조선의 언어이다. 연나라에서 온 위만이 고조선의 왕위를 찬탈하여 왕조를 이었다. 위만은 유이민 집단과 토착세력의 갈등을 줄이고, 한반도 북쪽의 지리적인 요충지에 자리 잡아 무역을 활성화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흉노전에 위만의 기사가 다루어지는데 흉노는 터키족을 말한다. 여기서 위만의 지배층이 터키계어를 썼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진한어는 원삼국시대 중 삼한의 하나인 진한의 언어다. 마한의 언어와는 다르고, 중국 진나라에서 온 유목민의 언어와도 어휘 차이가 있다. 진한의 토착민과 마한이 통했을거란 추측을 하며, 고대 홋카이도의 선주민 아이누 민족의 언어 아이누어와 비교해도 어휘 부분이 대응하고 있다. 아이누어 저층어는 지금의 한국어에도 영향이 미친다. 지리적 인적이동이 부른 언어 차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신라어는 복합어다. 퉁구스어계, 마립간, 터키계어가 등장한다. 신라 전기 박씨 신라의 언어가 퉁구스어계를 썼고, 김씨 신라로 왕조가 교체되어 신라 후기에는 터키어계를 썼다. 퉁구스어계는 단군조선, 동예, 여진과 같은 말이고, 터키어계는 위만 조선어와 같다. 이밖에도 스키타이족 유물과, 트라비다계인 가야족들로 인한 불교유입 등으로 보아 터키어 트라비다어, 싼스크리트어가 대응되고, 차용됨을 확인된다.

고구려어와 백제어 문헌은 찾아보기 어렵고, 신라어가 그나마 찾아볼 자료가 남아있다. 신라 통일 후 신라어 중심의 서라벌 언어가 백제와 고구려까지 전파된다. 반대로 중국 한자가 도입되며 점차 발음 동화가 일어나고, 백제와 고구려가 쓴 한자음도 신라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고구려어는 부여계 언어가 유일하게 전해지는데 백제어가 부여계 언어의 상층을 가지고 있다. 고구려어는 알타이적이면서 퉁구스제어와 일치하는 면이 있다. 거기에 일본어와 공통 어휘를 가졌다.

 

*한국어의 변화 유튜브 아래 참고

https://youtu.be/uGDDyMWHJtg

 

2) 중세 국어시대


1) 전기중세 국어시대

전기중세 국어시대10세기 초 고려왕조로부터 시작한다. 고려왕조의 중심지는 개경(개성)이며, 그 방언이 새로운 중앙어로 성립되어 국어사의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리적으로 고구려 저층, 신라 서북 변방으로 고구려와 신라 어휘 요소를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 고구려어 요소는 소멸되었다. 전기 중세 국어 자료는 한자로 표기된 자료가 대부분이며 중국 손목이 편찬한 ‘계림유사’가 대동운부군옥에 일부 인용된 것이 있고. 그밖에 향약구급방, 이중역, 고려가요, 몽고어차용어, 석독구결 불경 등이 있다. 들여다보면 계림유사와 향약구급방에는 중세 이후시대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있고, 다른 문헌자료나 지명을 통해 말, 매, 군사에 관한 몽고어 차용와 함경도 지명과 두만강의 이름에서 여진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중세국어 표기법 중 중세몽고어(차용어)는 a(ㅏ), o, u(ㅗ), e(ㅓ), ̈o(ㅝ), ̈u(ㅜ), i(ㅣ) 이다. 고려 광종시대에 과거제도를 시행하였는데 구어로 우리말을 사용하고, 문어로 한문을 사용하여서 한자어가 폭증하였다. 전기중세 국어시대는 우리말과 문자를 서로 상이하여 생기는 여러 문제가 있으나 상쇄할 방안이 뚜렷하게 없이 다른 언어와 문자를 차용하여 대안을 마련하고자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 후기중세 국어시대

국어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국어사 면에서 음운체계 변화가 일어난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이다. 후기 중세국어에 음운 체계는 훈민정음 체계에 잘 반영 되어 있다. 용언의 활용 체계는 대체로 현대 국어시대에도 일치하는 점이 많다. 어휘사 측면에 한자어 대량 유입이 확인되고, 이웃 나라로부터 중국어, 몽골어, 여진어 등 외래어가 들어오기도 한다. 한글 문체로 많은 문헌이 간행되어 연구한바 중세국어의 특징된소리가 등장하며, 모음 조화 현상이 강하고, 고대로부터 이어진 성조가 남아있고, 중세 특유의 주체, 객체, 상대 높임법 등이 발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전 보다 더 한자어 쓰임이 많고, 고유어와 한자어 지속적인 경쟁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고, 한글와 언문의 불일치가 있어 갈등이 엿보인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자료를 조선 왕조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세종 때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동국정운, 세조 때 월인석보, 구급방언해, 성종 때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금강경삼가해, 불항심경언해, 삼강행실도, 산군 때 육조법보단경언해, 시식권공, 중종 때 속삼강행실도, 이륜행실도, 번역소학, 번역노걸대, 번역박통사, 선조 때 칠대만법, 선가귀감, 광주간행 천자문, 소학언해, 번역소학 등이 있다.

훈민정음 체계는 초성을 중국 음운학의 자모 체계와 관련하여 기본자를 설정하고,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표기했으며, ‘ㆁ’은 15세기 초성 표기, 16세기 소멸, 종성으로만 사용되었다. 중성의 기본자의 상형은 천(ㆍ), 지(ㅡ), 인(ㅣ)의 삼재며, 기타 중성자는 이들의 합성으로 만들어졌따. 종성은 ㄱ,ㆁ, ㄷ, ㅣ, ㅂ, ㅁ, ㅅ, ㄹ 로 구성된다. 이 초성, 중성, 종성을 결합하여 훈민정음이 구성된다. 중세어에 중국 음운학의 술어 채용으로 평성, 거성, 상성으로 성조를 표기했다. 15세기 정서법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1차 적으로 각 음소를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2차적으로 가가 음절을 충실히 표시하는 것으로 한다. 종성의 ‘ㅅ’은 다음 음절의 두음이 ‘ㄱ, ㄷ, ㅂ, ㅅ’, 즉 초성 합용병서가 가능한 경우에 한해 내려쓸 수 있고, ‘ㆁ’은 초성에 쓰이는 것이 훈민정음 창제 시 원칙이었으나 앞 음절 말음에 표기하는 것으로 일반화되었다. 사잇소리는 훈민정음의 모든 문자의 음가대로 사용되는 것이 표기 원칙이다. 자음, 모음, 성조 체계를 살펴볼 수 있다. 한자음 표기법으로 동국정운식 표기법과, 동음을 기초로 한 표기법이 있다. 동국정운식 표기법은 한계를 드러내고 성종 이후 폐지되었다. 동음을 기초한 표기법은 연산군 이후 언해 문헌에서 전반적으로 채택되었다.

문법에서 조어의 합성법 예는 다음과 같다. 체언의 합성은 ‘수ᄐᆞᆰ, 암ᄐᆞᆰ, 안팏’ 등이 있고, 용언의 합성의 예로 ‘빌먹-, 딕먹-, 것곶-, 듣보-, 죽살-, 됴킃, 놉ᄂᆞᆺ갑-’ 등이 있다. 그리고 동사 어간과 명사의 합성의 예로 ‘ᄡᅮᆺ돌’이 있으며 예시가 적다. 어미 ‘-아’를 가진 부동사와 다른 동사 어간 합성의 예로 ‘나ᅀᅡ가-, 도라오-’ 등이 있다. 파생법 중 파생명사는 주로 접미사에 의해 이뤄진다. 명사에서 파생된 것 용언 어간에서 파생된 것, 인칭대명사의 복수형 등이 있다. 명사 ‘부헝, 그력, ᄑᆞᆯ’ 등 ‘-이’가 연결 ‘부헝이, 그려기, ᄑᆞ리’가 되었다. 용언 어가 ‘-ᄋᆞ/으)ㅁ’ 연결이 대표며, 중세국어 동사형 선어말 어미 ‘-오/우-’를 가져 파생명사와 구별했다. 일인칭대명사 복수형은 단수형 ‘나’를 제외 ‘우리’, ‘너’, ‘저’의 복수형으로 ‘-히’가 연결 ‘너희’, ‘저희’가 되었다. 그밖에도 파생동사는 명사에서 파생된 것과 용언 어간에서 파생된 것이 있다. 파생 형용사는 명사에서 파생된 것, 동사 어간에서 파생된 것이 있다. 파생 부사는 명사에서 파생 된 것, 용언에서 파생된 것이 있다.

문법 곡용에 대한 자동적 교체, 비자동적 교체, 조사, 대명사의 곡용이 있다. 자동적 교체는 주로 말음이 ‘ㅈ, ㅊ, ㅿ, ㅍ, ㅌ’과 자음군 ‘ㅎ’ 말음을 가진 경우이며, 비자동 교체의 예로 나모(목)은 휴지나 자음 앞에서는 ‘나모’로, 모음 앞에서는 ‘나ᇚ’으로 나타난다. 조사는 주격조사, 속격조사, 처격조사, 대격조사, 조격조사, 공동격조사, 호격조사의 곡용이 있다. 대명사는 1인칭 단수 ‘나’는 주격, 속격형이 ‘내’다. 2인칭 대명사 ‘너’는 주격형 ‘네’ 상성이며, 속격형 ‘네’는 평성이다. 미지칭 ‘누’는 주격형 ‘뉘’ 거성, 속격형 ‘뉘’ 상성, 대격형 ‘눌, 누를’ 등이다. 문법 활용에는 자동적 교체, 비자동적 교체, 선어말 어미, 어말 어미 활용이 있다. 중세어에 말음 ‘ㅿ’, ‘ㅸ’을 가진 어간이 많이 존재했다. 이 말음은 자음 시작 어미 앞에서 ‘ㅅ’, ‘ㅂ’으로 자동적 교체가 되었다. 그리고 ‘시므-’(식)은 자음 앞에서 ‘시므-’, 모음 앞에서 ‘시ᇚ-’으로 비자동적 교체가 되었다. 선어말 어미 활용은 의도법, 경어법, 시상, 감탄법 등의 선어말 어미가 있고, 어말 어미 활용에는 동명사, 부동사, 정동사, 계사 등이 있다.

문법에 특수조사는 기원적으로 명사와 용언에서 온 것들이다. 체언에서 기원한 것들이 속격을 지배하고, 용언에서 기원한 것들이 대격, 조격을 지배했다. 첨사는 강세의 첨사, 열거의 첨사가 있으며, 중세 국어의 문장을 분석하다 보면 문장의 서술어는 체언이나 동명사에 첨사가 연결된 것이 많고, 의문문에 많이 나타난다. 한문으로 부터의 영향이 많아 직역되어 국어에 일반화 된 것이 많으며, 단문은 거의 없고 복합문과 합성문이 많은 특징이 있다.

중세 국어의 어휘는 이미 한자의 영향을 받아왔고, 일상화되어 한자어란 의식이 없어졌을 정도였다. 자주 정음문자로 쓰여 진 것이 있고, 의미 변화를 격는 것들이 있었다. 그 예로 간난, 분별, 즁ᄉᆡᆼ이 있다. 이와 같이 한자어의 영향이 갈수록 커져 순수 국어를 소멸시키기에 이르렀다. 그 예로 슈룹, 온, 즈믄은 한자어 우산, 백, 천으로 대체가 되었다. 또 불교의 영향으로 불교 사상이 국어의 어휘에 미친 영향이 커서 불교 용어가 국어 어휘에 녹아들었다. 이밖에도 모음의 대립이 의미의 묘한 차이를 나타내거나, 자음이 평음과 된소리의 대립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경어법에는 존경법과 공손법이 존재했다.

 

*훈민정음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https://youtu.be/Ji-k65eXOmo

 

3) 근대 국어시대

근대 국어시대는 중세에서 현대로 오는 과도기에 해당한다. 17세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3세기 동안을 근대 국어시대로 본다. 시대의 주요 사건이 국어사에 영향을 준 다기 보다 국어의 음운 변화가 일어나는 획기적인 시점을 전환점으로 본다. 한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을 거쳐 변화가 나타난다.

근대국어의 특징문자 체계의 변화다. 성조가 거의 사라지고, 상성은 장음으로 변했다. 문자 ㆁ, ㆆ, ㅿ 등과 음운 ‘ㆍ(아래 아)’가 소실되고, 어두음절 ‘ㆍ’마저 ‘ㅏ’로 변했고, ‘ㄷ, ㅌ’의 구개음화가 일어나 ‘ㅈ, ㅊ’이 된다. 그밖에도 이중모음 ‘ㅐ’와 ‘ㅔ’의 단모음화가 일어나고, 유성마찰음(ㅸ, ㅿ), 선어말어미 ‘-오/우-’가 없어졌으며, 경어법도 존경법과 공손법의 체계로 바뀌어 겸양법은 사라졌다. 중세의 잡다한 첨사들이 사라지고, ‘야, 곳’ 등만이 남게 되었고, 한자어가 더 확대되고, 고유어들이 소멸되어갔다.

근대 국어 연구가 가장 활발할 수 있는 이유는 중세후기에서 우리 문자를 사용한 문헌 기록이 있어 현대로 이어지는 언어의 변화를 세밀하게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자료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용비어천가, 언해두창집요, 동의보감, 노걸대언해, 박통사언해, 삼강행실도, 신간증보삼약직해, 규합총서, 경신록언해, 화동정음통석고, 삼운성휘, 전율통보 등이 17세기에서 19세기의 자료다. 중세 국어에 비해 간소화 되어 진 것으로 보이는데 불필요한 것을 탈락시키고 실용적이고, 효율적으로 언어와 문체를 구사하려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순수한 국어 단어들이 한자로 대체되거나 소실되었고, 당지(당직), 다홍(대홍) 등 중국어가 차용어로서 새로운 단어가 추가 되었다.

 

 

 

 

 

 

4) 현대 국어시대

20세기 초 우리나라는 불안정한 대한제국이었다. 일본의 침략을 맞아 일제강점기 식민지 시기 동안 민족 분열, 민족 말살 통치를 받는다. 이런 고통 속에 독립운동을 하며 광복을 맞았으나 다시 한국전쟁이 일어난다. 어휘, 음운, 문법에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북에서 방언을 쓰는 사람이 서울로 피난을 오고 다시 서울에서 남으로 피난을 갔고, 전란 후 남에서 서울로 와 터를 잡아 살게 되니 표준말로 지정한 서울말은 더 이상 서울말일 수 없었다. 개화기 이후 급변하는 시대에 사회적 기능을 위해서라도 언어와 문자는 표준화를 이루어야 했다. 서울말은 지금까지도 과도기에 있다. 거기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더욱 서로 다른 언어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어 통일 이후의 표준화가 문제가 남게 되었다.

현대국어의 특징 중 우리 일상에 보이는 특이점은 다음과 같다. 유음 ‘ㄹ’은 어두에 오지 않으나 외국어 학습 결과 라디오(radio)는 어두에 사용되고 있고, 중세어의 성조가 없어졌으나 장모음 말(언), 눈(설), 단모음 말(마), 눈(안) 등이 상성이 음장으로 남은 것을 볼 수 있다. 또 공손의 2인칭 대명사 ‘저’가 확립되었으며, ‘아니다’는 형용사로서 활용하게 되고 동사로는 ‘아니하다’가 사용하게 되었다. ‘아니요’, ‘아니라’ 등이 ‘아니다’의 활용에는 중세어의 유영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어에서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사학법(사립학교법)’ 등 약어의 빈번한 사용과 ‘삐약삐약’, ‘엉금엉금’ 등 의성어, 의태어가 풍부한 것도 현대어의 큰 특징이다.

 

 

우리말의 언어적 생명력


역사적 맥락을 따라 언어를 흐름을 살펴보아 알았듯이 언어란 지리적 위치에 따라 지배층에 따라 집단에 따라 근접 국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고, 효율적인 언어를 지향하다보니 불필요한 어휘는 소멸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현대에 들어와서 표준어라는 기준을 만들어 언어와 문자를 쓰고 있지만 지방에 따라 여전히 방언을 버리지 않고 생활 속에 녹아든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광복 후 세계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것을 별개로 문화강국으로서 우리말의 매력을 전파하고 있다. 조용한 전파를 이룰 수 있었던 데는 강요가 아니라 글로벌한 세계화에 창의적인 콘텐츠와 더불어 언어적 매력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말이 지닌 언어의 소리가 의미 있게 전달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의 존재는 언어에 더욱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우리가 우리말을 의미를 손상하지 않고 생각 그대로 의미 그대로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귀한 것이다.

앞으로 AI시대에 통역의 어려움은 없어지겠지만, 우리는 태어나서 처음 습득하는 모국어로서 우리는 생각하며 말하고 기록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은 우리말의 풍부한 언어적 가치와 효율적인 문자를 가진 것에 더없이 많은 것들을 감성적이고 창의적으로 생산해 낼 것이다. 이미 스마트폰에서 문자기록의 단순화는 한글만한 것이 없고, BTS 아이돌 그룹의 우리말의 노래가사는 그대로 전 세계에 퍼져 울리고 있다. 남북통일 후라 던지, 통일이 아닌 다른 형식의 남북 자유교역이 이루어지는 때가 온다면 표준말은 남북의 경제력, 국방력, 문화의 영향력 등으로 인해서 점차 한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고 그 다른 한쪽이 받아들이는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우리말의 언어적 생명력은 어디까지 일까를 생각하면 아주 끝없이 이어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우리말은 쓰러져도 쓰러지지 않았던 끈질긴 DNA를 가지고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우리만 아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감히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언어를 바른 길로 인도하겠다는 국민적 의식이 없다면 우리는 집단이 쉽게 쓰는 말로 축약된 외계어나 어려운 한자어, 외국어를 거르지 않고 생활에 쓰고, 굳히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말을 더욱 우리말로서 가치 있고 뜻 깊게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가짐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강길운, 국어사정설, 한국문화사, 2004

박병채, 국어발달사, 세영사, 1996년

이기문, 국어사개설, 태학사, 2007년

최전승, 최재희, 윤평현, 배주채, 국어학의 이해, 태학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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