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수영
김수영은 우리나라 근대문화 대표시인 중 하나다. 1921년 서울 종로구에 태어나 십대 중순까지 보낸다. 동경 고등학교 다니고, 조선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만주로 이주하기도 한다. 1945년 8.15광복 후 귀국해 대학편입후 시인들과 시집을 간행한다. 1950년 6.25전쟁발발 공군군에 징집되어 후에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다. 1955년 1.4후퇴 겪기도 한다. 한 개인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이 영향을 받고 작품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수영 시인은 자유를 그리나 자유를 말하지 않는다. 초기 시편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한다. 자유에 담은 것은 자유로움 그 자체와 불가능한 여건에 대한 절규다. 우리나라의 독립과 정치적 이상을 원한다. 1960년 4.19혁명 일어났을 때 설움과 비애로 자유를 그린다. 굵직굵직한 시대의 고통을 고스란히 겪은 세대로서 시인으로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시詩로서 남겼다.
김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
『거대한 뿌리』(민음사, 1974) 김수영 시집은 그의 자유와 꿈의 시세계를 초기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은 드러나게 정치적 내용을 언급하지 않고 추상적 용어를 사용한다. 좌절의 크기가 이겨낼 수 없을 만큼 커 절규할 뿐이다.
4.19혁명을 맞아 그는 진보주의, 민족주의적 면모를 보였다. 다만 혁명은 타협 없는 결별로 결단을 내리고자 한다. 그런 혁명은 자취를 감추고, 자유라는 이상이 멀어져 갔을 때, 그의 인생 말기는 가난한 삶, 돈의 대한 경멸이 주를 이룬다.
**김수영 시인의 초기, 중기, 말기의 작품을 하나씩 선변하여 소개하고, 그의 시상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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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시대를 보낸 한 개인이자 시인으로서 그의 시세계가 마냥 시인의 것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의 일부분으로서 가치를 가진다. 전쟁을 피한 자, 피하지 못한자 그러나 나라의 역사는 비껴날 수 없는 숙명을 만든다. 행동한 자, 방관한 자 따로 없이 시대와 역사는 개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편을 가르고, 전쟁을 연이어 치루고, 나라의 독립과 정치를 바로세우기까지 고단한 우리나라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지나쳐갔다. 체념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한 개인이 그리는 자유의 갈망은 한낱 한량이 바라는 자유가 아니다. 간절히 바라지만 이룰 수 없는 꿈같은 독립과 개인의 삶이 이룰 수 있는 최고 영위의 자유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자유를 그리나 말할 수 없었다. 시인으로서 그가 그린 세상은 참혹하나 희망을 차마 버릴 수 없고, 혁명을 말하나 점진적일 수 없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한 것이 아니고 밀물과 썰물처럼 오차 없이 시간의 흐름대로 흘러가 기어코 이루고자 한 상태가 머물지 못하고 형태를 변형시킬 뿐이었다.
현대시론 - 비유에 대하여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적 방법, 그 방법의 하나가 비유다. 다른 사물에 비유함으로써 함축적이고, 효과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 비유는 ‘유추’를 기반으로 성립하는데 말 그대로 유사한 점을 가져와 미루어 추측하는 것을 말한다. 비유는 유추가 기본적인 원리다. 추정하여 두 사물 사이의 유사성을 찾고, 동일선상에서 연속성을 띄다 동일화를 이루려 한다. 문학의 구체적인 형상화 방법 중 하나가 비유다. 비유의 종류에는 직유, 은유, 의유, 대유 등이 있다.
직유와 은유의 개념 서술
직유를 명유라고도 한다. 비유의 가장 초보적인 방법의 하나이며, 하나의 사물을 다른 사물에 비교하여 그 비유가 가장 선명하고 명확하게 만들어 상태를 구체적으로 알리는데 효과가 있다. 직유의 언어적 표현은 ‘-와 같이, -처럼, -듯이, -인 양, -만큼, -마냥’ 등의 연결어가 있다. 직유는 단순히 두 사물의 유사성을 드러내려는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어떠한 인식을 드러내려는 차원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몫을 발휘한다.
은유의 시적 가치는 매우 크다. 은유는 모든 비유방법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은유를 암유라고도 하는데 대상의 이미지를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A는 B다 라는 결합은 연결어 없이 생략된 의미로 인해 의문을 솟구치게 하여 차이성과 유사성이 서로 맞부딪치게 하고 더없이 탄력감을 고조시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게 한다.
1) 직유로 표현된 시 - 정지용의 <향수>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정지용, <향수>, 부문
정지용의 <향수>는 시어가 시작됨과 동시에 그리웠던 고향에 도착한다. 자신이 가장 그리워했던 고향의 전경을 한 눈에 담아 재생시킨다. 한 순간도 잊은 적 없고, 잊히지도 않음을 시어의 반복으로 간절함을 전달시키고 있다. 기억의 한편에서 재생되는 고향의 이미지는 청각을 자극시키며,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장 그리웠던 인물을 들을 불러 모아 앉히고, 눈으로 한번, 마음으로 한번 그립다 불러본다. 여기서 작가는 ‘흙에서 자란 내 마음’의 직유로 표현했다. 자신의 지금껏 자라온 자양분이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것은 분명 고향의 모든 것에서 전수 받아온 것이라고 말한다.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의 구절에서 옛 고향의 그 시절이 다시 되돌릴 수 없음을 알지만 자신이 재생시키는 기억의 순간이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으로 현재의 이미지가 포개어져 함께 이어지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직유는 ‘밤물결’,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처럼 두 사물의 유사성의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작가의 내면에서 포착으로 건져낸 이미지의 연결로 고향의 그리움이 어디서부터 기인할 수 있는지 모든 순간 그리움에 가득 차 다시 기억의 한편이 재생되고 있음을 그린다.
2) 은유로 표현된 시 - 김수영의 <사랑>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 김수영, <사랑>, 전문
김수영의 <사랑>은 유사성에 기초한 은유다.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시구절에서 변치 않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으로 시작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번개처럼, 번개처럼’의 구절에서 어둠과 불빛 속에 불안이 떠다닌다. 상황은 불안한데 ‘너’는 어떠한지 묻는다. ‘변치 않는 사랑’을 하는 ‘너’는 어떠한 모습인지 그려내고 있다.
‘너의 얼굴은, 꺼졌다 살아났다’, ‘금이 간 너의 얼굴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불안한 상황인데 ‘변하지 않는 사랑’을 하는 그 당사자인 ‘너’는 번개처럼 금이 간 얼굴로 비친다고 말한다. 번개는 벼락같이 번쩍하고 내리치는 강렬한 빛을 내며 가슴을 무겁게 내리누르며 크게 울린다.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을 통해 그 사랑은 생각보다 강렬하고 무겁게 다가온 것을 알 수 있다. 김수영의 <사랑>의 시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을 ‘번개’와 ‘금이 간 너의 얼굴’로 표현한다. ‘사랑’이 어째서 ‘번개’인지 그 의미를 알아가는 시다. ‘번개’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인식이 ‘사랑’과 어떻게 결부시켜야만 하는지 시는 은유로서 과감하게 시행하고 있다.
시 창작에 있어서 비유 필요성
사물 그대로 표현해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용하는 흔한 관용적 표현만으로는 자신이 추구하는 독특하고, 다채로운 표현에 제약이 있다. 사물의 이미지를 언어적으로 표현하려하는 것은 진실에 가까워지려는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망각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시적표현을 극대화해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고, 자신을 해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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